카테고리 없음 2010. 3. 6. 23:28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22609&table=global&level_gubun=all&mode=search&field=nic2&s_que=@_@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forum1&uid=5070






정말로 기구한 운명이군요

영화보다 더 극적입니다

벌써부터 영화 개봉이 기다려집니다













윗 기사의 댓글


사실인쪽보단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신 많지. 당시 소련군에는 수많은 아시아 유목민계도 참여하고 있었거든.또 한국말을 할줄안다고 해도. 일본군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적은게 그들보단. 스탈린이 소수민족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간 고려인출신일 가능성이. 일본군포로출신 가능성 자체보다 훨신크고,,,

그럴가능성도 있긴한데. 희박해, 저렇게 되려면,,,,
할인골전투는 사실이며 전투보단 전쟁에 가까움. 만주사변처럼 일본관동군이 정권의 소극적인 추인하에 소련군의 방어수준을 떠보기 위해 도발을 일으킨 전투인데. 기세싸움속에 확전이 되어서 나중에는 전쟁수준이 됨, 애초 몽골에게 도발하자 그 후견국이라 할수있는 구소련이 주코프를 사령관으로 반격한다. 소련최초로 대규모 기갑군이 실전을 했고, 이것때문에 일본은 대패하고, 힘을 실감. 대 소련전쟁계획을 취소하고, 해군중심의 계획으로 변경하게 된다. 당시 일본군 포로들은 아마 후에... 소련군 특유의 벌칙부대?(규율어긴 병사를 계급강등후 매우매우 위험한, 전시 비무장. 철조망제거.등의 임무를 해서. 10번인가 살아남으면 원대복귀시키는... 한마디로 죽으라는 부대)에 배치됬을가능성이 높고, 그처우에 불만. 독소전 개전후 독일에 항복한 이들은 있을것이고, 그중 독소전후반 건설현장 노동자나. 시골농사 잡부로 쓰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서부방벽을 건설하던 노르망디까지 갈 가능성도 있긴하다.. 이들은 대게. 전후 미국행을 원했는데. 협정에 따라. 소련으로 송환되었고, 상당히 많은수가 처형되었다. 나머지도 전후 복구에 동원형?됬는데. 초기에 죽은사람이 많다들음. 한10년쯤 했다더라.






홀더 채택 - 노원도킹책갈피

posted by 공릉역가즈아님의 산책하듯 디자인
: